가족의 힘으로 이긴 암 투병기
가족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항상 나의 편에 서서 묵묵히 응원하고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특히 암 환자에게 가족은 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고 힘든 투병 과정을 이겨낼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는 숨은 조력자입니다. 오늘은 암을 극복한 주인공 대신 그 옆을 지키며 완치를 향해 달려온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자궁경부암 4기 진단을 받은 아내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암을 공부하며 극복으로 이끈 유명길(43·서울 성북구)씨의 감동적인 투병 동반자 이야기입니다.

출산 후 3개월, 자궁경부암 진단의 충격
유명길씨와 그의 아내는 결혼한 지 1년 남짓 되던 2016년 12월에 큰 시련을 겪습니다. 아내가 자궁경부암 2기를 진단받은 것입니다. 3개월 전 아이를 출산할 때 자궁 쪽에서 발견된 혹이 암으로 판정된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닥친 슬픈 소식에 우울함을 떨쳐내기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모습까지 함께 지켜볼 수 있을까'라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4기암이 곧 말기암과 동일하다는 인식이 퍼져있을 때라서 전이 진단이 우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되었다는 책임감이 유명길씨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는 각오로 아내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종양이 주변 조직까지 침윤한 상태라 근치적 절제수술과 림프절 절제, 항암, 방사선 치료까지 3중 표준 치료를 모두 받아야 했습니다.
자궁경부암 표준 치료 과정
- 근치적 절제수술: 암세포가 있는 조직 및 주변 조직을 제거
- 림프절 절제: 암이 전이될 수 있는 림프절 제거
- 항암 치료: 항암제를 이용한 전신 치료
- 방사선 치료: 국소 부위에 고에너지 방사선을 조사
합병증과 전이, 연이은 시련
치료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합병증의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수술로 서혜부(사타구니) 림프절을 대량 절제해 림프부종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다리가 붓고 통증이 심해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이면 잠을 잘 수조차 없었습니다. 난소 제거 후 생긴 조기 폐경 증상과 배뇨장애로 약물도 복용해야 했습니다. 유명길씨는 괴로워하는 아내의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고민하다가, '림프순환 마사지'를 직접 배워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이후 매일 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로마 오일로 아내의 다리를 마사지해주었습니다.
점차 아내의 몸이 회복돼 일상을 되찾는 듯 했지만, 안도의 순간도 잠시, 2018년 3월 정기검진에서 우측 폐에 2~3cm 크기의 결절이 발견됐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 자궁경부암이 폐로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 '4기'로 분류되기 때문에 기수가 2기에서 4기로 높아졌습니다. 결절이 있던 우측 폐엽을 절제한 뒤 전신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유명길씨는 "4기암 생존율 등 각종 통계 수치는 암울함을 더했고 완치가 아닌 생존 기간을 늘리는 목적의 '고식적 치료를 진행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를 살리려면 암을 잘 알아야만 했다"
유씨는 그때부터 암에 대해 치열하게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영문학 전공을 살려 해외 논문, 원서 등을 읽고 온라인 카페에서 찾은 100여명의 암 환자 사례를 모아 비교분석하며 암 치료법과 보조요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자연치유 종양학'을 비롯해 두 권의 원서를 번역 출간하면서 한 권은 쉽게 정리해 블로그에 업로드하며 다른 암 환자들에게도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아내의 투병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는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암 치료에 대해 공부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았습니다.
암 극복을 위한 유명길씨의 노력
- 해외 논문, 원서 등 전문 자료 연구
- 100여명의 암 환자 사례 수집 및 분석
- 자연치유 관련 원서 번역 및 블로그 공유
- 북한산 근처로 이사하여 자연 환경 조성
- 산림치유 지도사 자격증 취득
그러다가 결국 생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느껴 환경이 좋은 북한산 근처로 이사도 했습니다. 고된 치료로 기력이 떨어져 누워만 있으려는 아내를 부축해 북한산 둘레길을 함께 걸었고 날씨가 궂으면 아파트 계단이라도 함께 오르내렸습니다. 체력이 회복돼가는 아내를 보면서 자연 속에서 하는 활동의 치유력을 경험했고, 그길로 산림치유 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이 모든 게 아내를 더 전문적으로 제대로 돌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의지
하지만 하늘도 무심했습니다. 폐 절제술을 받은 지 두 달쯤 지나 아내가 극심한 호흡 곤란을 호소했습니다. 곧바로 응급실에 내원했고,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는 기흉이 발견됐습니다. 응급 봉합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난소 제거로 인해 여성 호르몬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골밀도가 점점 감소했고, 2023년 3월에는 유방 미세석회화로 인한 전절제술도 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이런 시련에도 유명길씨 부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유씨는 "아내는 폐전이 이후 오히려 더 담담해 보였고, 나를 믿고 의지하며 열심히 치료에 임해줬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병원에서의 표준 치료는 빼놓지 않고 잘 받았습니다. 여기에, 2~3주에 한 번씩은 기능의학병원을 찾아 비타민D·비타민K2 보충(골밀도 관리)과 영양요법 등을 병행했습니다. 꾸준히 산을 오르고 요가 등 맨몸운동을 하면서 체력 관리에도 힘썼습니다.
기적 같은 완치, 새로운 시작
건강 회복을 위해 부부는 무던히 애썼습니다. 다방면으로 노력한 덕분에 마침내 아내가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정기검진에서는 "전이·재발 소견이 없다"는 결과와 함께 '생존자(survivor)'라는 기록이 차트에 적혔습니다. 그 날은 부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순간입니다. 아내는 이제 직장에도 복귀했습니다. 즐겁고 살 맛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건강 관리를 여전히 열심히 하는 부부는 주말이면 함께 북한산 형제봉을 오릅니다.